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New 요한복음 1장 19절 강해
19절 (강해요약)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내어진 자들이 있었습니다.
박경호헬라어 번역성경 New 요한복음 19절 입니다.
" 보내어진 자들 " 바리새인들에게서 세례요한을 알아내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보내어질 때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았을까요? 몰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시키는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들에 대해서 나쁘게 이야기합니다.
왜 그런 일들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에 딜레마 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생각 없이 그냥 남이 시키는 대로 할 때가 있습니다. 직장이든 어디서든 마찬가지입니다. 운명을 잘 타고 났다면 그런 일들에 엮이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우리와 연관된 일들을 이해할 때 왜 쓰임 받는지를 이해 못합니다. 나는 그냥 내가 처한 환경에서 내가 할 일을 한 것인데 그것이 죄가 되느냐고 반문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들을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례요한을 추적해서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자꾸만 백성들은 빠져나가고 자신들의 힘마져 약해지니 무너뜨리려고 보낸 것입니다. 하지만당사자들은 이 사실도 모릅니다. 그냥 시키니까 물으려고 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키는 대로 한 이들은 하나님과 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마귀와 하나님이 싸운다고 배웁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임무를 수행하지만 나중에는 그 일로 마귀 편으로 엮입니다. 사람들은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엮이는 것을 처음부터 차단해야 합니다.
지옥 가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마귀의 왕국 안에 있습니다. 마귀는 땅의 왕들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지옥이 확정된 자들과 같이하면 결국은 엮이게 됩니다. 이것이 굉장히 무서운 일입니다. 나는 선한 마음으로 불신자들 대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려고 애를 씁니다.
문제는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엮이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청탁, 큰것도 아닌 것에 의해 나도 엮입니다. 결국은 나도 하나님께 대적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직접 오지는 않습니다. 즉 마귀는 직접 역사하지 않고 다 거짓선지자와 사람들을 엮어서 자신의 큰 힘을 발휘해 믿는 자들을 공격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가 공격할 때 앞선 자들은 사실은 선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죄가 크게 없습니다. 나쁘지가 않아요. 그러나 어디에 쓰임 받았느냐! 마귀에게 쓰임 받았기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여기 보내어진 자들이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바리새인들에게 쓰임 받았고 바리새인들은 기독교에 높은 목사이지만 사실은 마귀입니다. 하나님을 좋아해서 따랐을 뿐인데 그것이 마귀에게 쓰임받은 것입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후회합니다. 내가 그 사람을 왜 만났을까? 내가 그 사람을 왜 만났을까? 내가 그 사람을 왜 존경했을까? 결국은 지옥에 가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엮이는 수많은 상황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하든지 선하지 않든지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니라 바로 존재입니다. 내가 어떻게 흘러가느냐는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가 누구와 관계되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순간을 누구와 연루 되느냐에 운명이 달라집니다.
내가 어떤 영화를 보고 어디를 가고 또 무엇을 사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와 연루되느냐 입니다. 이것이 운명을 바꿉니다. 그런데 오히려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합니다.
내가 세례요한의 제자이고 그 출신이었으면 그냥 구원 받았을텐데 어떻게 바리새인들을 알아서 거꾸로 지옥에가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할 말이 많이 있죠.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내가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자동적으로 그와 한편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지금 바리새인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은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먹는것 입는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만남입니다. 그래서 만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알고 지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굉장히 두려운 일입니다. 내가 어쩔 수 없이 인간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거나 어떤 형태로든 관여를 하게되면 영적으로 무너질 수가 있습니다.
만남이 독이되는 이유는 마귀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의 사람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고가 달라져야 합니다. 사람을 많이 알면 경제적,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당장에 손해가 되더라도 우리는 영을 지켜야 합니다.
내가 의지하고 바라는 것은 사람도 아니고, 환경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땅의 돈과 권력에 끌려 다니고 시간과 정력을 소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얻어야 하고 하나님께 붙어야 합니다. 이들이 바리새인들에게 붙은것은 자신들의 이익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면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부족한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외로울 틈이 없습니다. 이 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나요? 이 좋은 것을 버리고 고작 세상 즐거움인 돈과 인맥을 얻으려 합니까? 결국 한심한 인생으로 끝나버립니다. 애초에 하나님을 얻으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마귀에게 쓰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에게 붙은 이들도 하나님께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우리를 기도하게 하지만 반대로 세상 사람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수시로 전화하고 사람을 만나 술을 마십니다. 우리는 조금도 부족함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가 부족하지 않게 할 방법을 다 마련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구하면 됩니다.
모드를 바꾸어서 영적인 것을 얻기 위해 우리 주변의 모든 관계를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을 잘 하는 것입니다. 연루되고 알면 알수록 피해만 커질 뿐입니다. 인맥에 대한 끊김에 아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과 연루 되기 싫기 때문입니다. 차단하는 것이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친한 것 보다 중요함을 명심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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