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목사의 헬라어 번역성경 New요한복음 1장 15절 강해
15절 (강해요약)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그에게 요구하여묻기 위해, 유대인들을 보내었을 때, 요한의 증거는 이렇습니다. 그는 공언하였으며 부인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라고 공언하였습니다.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New 요한복음 15절 입니다.
" 예루살렘에서 " 예루살렘은 이제 종교의 메카 그리고 이제 소위 구원 얻은자들의 모임 성이 확실한 구원 얻은자들 이런 것입니다.
" 제사장들과 " 제사장들은 급수가 다릅니다. " 레위인들이 " 레위인들은 돕는자들, 예배의 중심부에 있는자들 입니다. 유대교의 중심부가 레위인들 입니다.
"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그에게 요구하여 묻기위해 " 그러니까 이제 종교의 메카에 있는 자가 볼때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그냥 방황하며 기도 생활하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그에게 간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설교가 사람들에게 먹히고 그의 신앙 양식이 먹혀서 사람들이 가니까 그것을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짜인가 진짜인가 판단하기 위해서 종교지도자들이 묻는 것입니다. 요구하여 묻기를,
" 유대인들을 보내었을 때 " 자! 이제 제사장과 레위인이 직접 간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가서 묻고 와! 하고 보낸 것입니다.
" 요한의 증거는 이렇습니다 " 그러니까 이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보낸 유대인들을 그들이 왜 보냈을까요? 사람들이 가는데 그 메세지의 진위 파악을 위해서 입니다. 예배 인도자가 할 부분을 누가 하고 있으니까 그것을 그냥 냅 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냅 두자니 내가 약해지고 그래서 시험 삼아 보냅니다.
"그는 공언하였으며 부인하지 않았는데 " 무엇을 공언하는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당연히 그리스도가 아니지요.
자!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영이 우리 영에 들어오셔서 다스리는 것이 그리스도 입니다. 세례요한은 그리스도화된 참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 세례요한이 나는 아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에 예수님의 영이 들어오셔서 다스릴 때, 나에게 하나님의 어떤 신령함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속을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예수라고 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있다고 착각할 때 속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양식들이,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사는 이러한 구원의 은혜들이, 인간에게 있다는 착각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구원 안에 있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메세지는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이 메세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사람을 보자마자 독사의 새끼들아! 하고 외쳤는데, 그것은 원래 세례요한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안에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신학을 하고 성장해서 내가 맺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내가 맺는것이 아닙니다. 열매는 예수님이 열매 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착각하면 큰일 납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서 어떤 능력이 일어났든지, 참된 진리가 나왔든지, 또는 참된 열매를 맺었든지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원래부터 하나님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올바를 수가 없습니다.
인간 안에는 귀신이 있습니다. 구원 받아도 우리안에 귀신이 있습니다. 우리가 왜 외롭습니까? 귀신이 외로움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내 안에 귀신이 있어서 내 지,정,의를 통해 외로움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두렵습니까? 내 영이 아니라 내 안에 귀신의 영이 나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입니다.우리가 왜 시기와 질투를 합니까? 내 안에 귀신이 내 지,정,의를 통해 나에게 시기와 질투를 주는 것입니다. 귀신이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음란하고 심지어 욕심을 부리고 귀신의 역사가 우리에게 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만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반대로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어두움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 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도 있습니다. 또 마귀 영이 내 안에 공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 때문에 우리 안에 좋은것이 드러날 때, 우리는 거꾸로 내 악들이 숨겨질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동일 합니다. 또 악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남들에게 총망받을 때, 인정 받을 때, 내가 그리스도라 하지 않는다 할찌라도 마치 한 모든 내용들을 내가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 때부터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가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또 자기가 감람나무라고 합니다. 또는 자기가 엘리야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중에는 성경의 인물을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나는 다윗이라고 합니다. 나는 아브라함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 입니다. 그 외에는 하나님 앞에 할 말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이 죄인을 하나님이 불쌍해서 쓰시는 것입니다. 지옥에 갈까봐 보혜사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도와주러 오신 것입니다. 도저히 인간이 되지 않으니까, 도저히 안되는 것이 인간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도저히 인간은 구원이 안됩니다. 너무 악합니다. 너무 더럽습니다. 우리를 구원시켜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마굿간에 오신 것처럼 우리같은 더러운 존재에게 오신 것입니다.
냄새가 납니다. 함께 있으시겠어요? 나 같으면 함께 못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이것이 십자가 입니다. 매일처럼 나를 짊어지시는 것입니다. 이런 더러운 나를 매일 짊어지시면서 참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십자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오셨기 때문에 아닙니다. 속죄의 주로 오신 다음에 나를 참아 주십니다. 견뎌 주십니다. 함께 하시니까요! 이것이 은혜 중에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진리를 나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이것을 알려 주십니다. 깨닫게 해주십니다. 은혜입니다. 인간 자체는 부패한 존재 입니다.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없으니까 예수님께서 오셔서 접붙임 당한 다음에 스스로 내 안에서 열매를 맺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세계 입니다.
여호수아 없으면 절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갑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인도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따라갔을 뿐입니다. 우리는 백성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여호수아가 아닙니다. 우리는 능력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어떤 가산점을 주면 큰일 납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다 하여서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면류관을 다 벗어서 드립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내가 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었구나! 누군가 나에게 와서 해주었구나!
나는 은혜를 받은 자 입니다. 나는 은혜의 수혜자 입니다. 나는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분이 준행하신 것입니다.
지금 세례요한이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참된 인정입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그리스도 때문이야! 내가 한 것이 아니야! 너희도 가능성이 있어! 하고 남들에게도 제시하는 것입니다. 참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율법이 안 되는데 되게 해주는 것이 복음 입니다. 복음은 율법을 어긋나게 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순종이 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제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옛날에 안되었어요! 그런데 그 율법을 만드신 그 분이 내게 들어오셔서 이루어 주십니다. 거듭날 때도 되나요? 거듭날 때는 안됩니다. 거듭날 때는 율법대로 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잘 되지 않습니다. 뜻대로 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잘 안됩니다. 그때는 양도가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양도, 나의 내어 맡김, 나의 의탁함, 이것이 믿음 입니다. 믿음은 내가 원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나의 통치자가 드디어 해주시니까 나는 그냥 뒤에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떡고물 먹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회사를 차렸는데 20년 동안 적자가 났습니다. 그래서 망할 위기 입니다. 그런데 어떤 청년을 불러와서 해결하였습니다. 그런데 흑자가 납니다. 내가 한 것입니까? 내가 회사에 불러온 그 직원이 한 것입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전에 먼저 나 자신이 철저히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드디어 나를 잡았습니다. 내 회사의 정권을 잡았습니다. 내 인생을 드디어 붙잡았습니다. 그분이 나를 끌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놀라운 능력. "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영존하시는 아버지라! " 이사야 말씀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타종교와 다릅니다. 타종교는 내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예수님이 직접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내 지,정,의를 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제 이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율법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주인이 되어서 나를 주장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불신자는 안됩니다. 불신자는 먼저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기 땅에 오셨습니다. 오셨는데 영접하지 않습니다.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임하는 것입니다. 천국이 상속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인간이 안됩니다. 복음만 됩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출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오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것이 기쁨 입니다. 진짜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오실 거라는 것입니다. 구약때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뭐예요 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때 빨리 오시지 않았나요? 그것은 그 전에 먼저 세례요한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회개하고 돌아서는 작업을 통해서 오실 수 있는것을 만들어 드리는 것입니다. 성결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실 수 있는 방법입니다.
먼저 성결이 깔려야 합니다. 그 위에 오시는 것이지 이런 불모지에는 예수님께서 못 오십니다. 맨 땅에는 못 오십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먼저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 먼저 거듭남을 통해서, 성령님을 통해서 내가 이제 회개의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애쓰고 노력합니다. 법을 따라 살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실제로 우리에게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똑같이 다 영 입니다. 거듭나게 한 분도 영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것도 영 입니다. 이것이 원어로는 다 영 입니다. ' 거룩한 ' 이 붙을 때가 있고 안 붙을 때가 있습니다. 자! 그래서 성령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입니다. 다 같은 성령이니까 같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같지 않습니다! 거듭날 때, 오는 영 또 구원 받을 때, 오는 영이 다릅니다. 원래 다른데 우리는 합쳐서 성령이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방언하면 다 구원이라고 합니다. 방언은 거듭나지 않아도 올 수 있는 것이 방언 입니다. 은사의 세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거듭나지 않아도 올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거듭남이 중요한 것이고 구원이 중요한 것인데 영이 다릅니다. 다른 영 입니다.
신약은 복음입니다. 신약이 메인 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됩니다. 먼저 구약이 통과 되어야 합니다. 구약은 신약을 위한 발판 입니다. 구약 없이는 절대 신약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두 개가 다 있어야 합니다. 구약 위에 신약이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첫 번째 계약 위에 새 계약이 있는 것입니다. 이 새 계약이 예수그리도에 대한 복음 입니다. 그러면 신약만 이루어지느냐 아닙니다. 구약 때도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잘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복음전파라는 것은 지금처럼 사영리가 아닙니다. 복음은 능력이지 이론이 아닙니다. 복음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예수님께서 내 영에 들어오는 사건 구원이고 복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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