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New 요한복음 1장 17절 강해


 17절 (강해요약)

그런즉 그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 당신은 누구입니까? 우리를 보낸 자들에게 대답을 주기 위함입니다. 당신 자신에 대하여 누구라고 말합니까? "

박경호헬라어 번역성경 New 요한복음 17절 입니다.

" 그런즉 " 그런즉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보낸 사람들이 당신은 누구냐! 엘리야냐! 선지자냐! 아니다! 라고 대답하니까 그러면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 그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우리를 보낸 자들에게 대답을 주기 위함입니다. "

이런 것입니다. 자신은 선지자도 엘리야도 아니라고 하고, 자기들은 사명을 감당해야 하니까,  답을 주기 위함입니다. 제발! 어떻다고 아무거나 말씀해 주세요! 라는 것입니다. 정체성 입니다.

" 당신 자신에 대하여 누구라고 말합니까? " 자기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선지자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라고 하니까 그럼 당신은 누구입니까? 

우리도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 가운데 사람들이  당신은 누구냐! 사도냐! 선지자냐! 아니면 복음 전파자냐! 물을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하게 되었느냐 라고 질문이 들어올 때,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고 하면 그것은 말도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여로보암이 산당을 차린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짓지 않은 자기가 만든 성전들, 자체가 미혹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 내가 그게 좋아서 신학을 하고 이런 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나는 원래 이것이 직분이야! 하는것도 미혹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때 세례요한의 답변이 우리에게 중요한데요. 이미 구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예언되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나의 복음 전파가 예언된 것입니다. 나의 출생이 예언된 것처럼 나의 구원이 예언된 것처럼 복음 전파도 예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내가 모셨던 목사님은 제 머리에 손은 얹고 수없이 예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이 아들이 금빛 날개를 달고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고 다닙니다. 하는 그런 기도를 수없이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나는 그런 마음이 없었는데, 한명이라도 인도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구원 받았다 할지라도 내가 전파의 사명이 예정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위법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이사야에서도 예언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제 예언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입니까? 난 누구냐! 입니다. 예언 되어있는 나는 누구냐! 입니다. 내 존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지만 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소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소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메세지 설교 진리 입니다. 내 모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메세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메세지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제부터 설교할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 만큼은 예언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들이 나를 통해서 무엇을 얻느냐 이 메세지는 하늘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메세지는 내것이 아니고 하나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요한이 하는 말입니다. 

동시에 우리 모두가 같이가야 됩니다. 어디서 태어났고 어떤 일을 하고 살아왔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경 말씀에 대하여 신앙에 대해서 성령의 감동으로 나오는 이 메세지 이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교회에서 목사에게 집중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교회에서 장로에게 집중할 수가 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이 메세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 메세지는 예정된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교회 내에서 목사님께 집중해서 목사님과 어울림을 좋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사님을 통한 개인적인 도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메세지가 살아야 합니다. 말씀이 살아야 되며 이 말씀 나에게 와야 됩니다. 이제 교회가면 목사님의 넥타이가 눈에 보이고, 목사님의 어떤 언변이 보이고, 외모가 보입니다. 그리고 이제 집에가서 남편을 보면 목사님은 이런데, 하고 목사님의 모습이 남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예배 가운데 성가대가 보일 수 있습니다. 찬양 인도자의 모습이 보일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쁘거나 잘생긴 사람이 보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남는 것은 오늘 나에게 이 말씀을 하셨어! 하는 메세지가 남는 것! 그것이 복음 전파적인 사명이란 것입니다.

무엇이 남아야 하느냐! 남는것은 메세지가 남아야 되는 것입니다. 메세지가 우리에게 남을 때 거기서 구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거기서 거듭남이 일어납니다. 메세지가 꽉! 찬 상태! 진리에 대한 탐구 입니다. 어떤 말씀이냐는 것입니다. 어떤 은혜이냐 입니다. 그래서 그 의도가 남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을 주는 것입니다. 그 외에 얻은것은 다 부과적인 것입니다. 본질이 아닌 것입니다.

이 메세지가 남기 위해서 우리가 오늘도 유트브로 영상을 남기는 것입니다. 저는 창세기부터 전장 강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 각 구절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무엇을 남길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른 번역과 그리고 메세지 뿐입니다.
이것이 남겨지는 것이 유일한 내 소망입니다. 다른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내가 모셨던 목사님을 통해서 내게 세계로 나가리라! 복음 전파가 되리라!는 예언을 수없는 들어왔고 하나님께서 도 저에게 복음 전파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당연히 남길것은 내가 아닙니다.

오직 메세지만 남겨야 합니다.  이 메세지는 천국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글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선지자의 말은 지금도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세지는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메세지는 개인의 신앙 주관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리인데 예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 영의 귀가 어두운 사람들은 메세지도 꼭 지옥가는 사람들의 메세지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비슷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도 비슷한 얘기 하던데요! 아닙니다. 다릅니다.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진짜과 짝퉁은 똑같이 보입니다. 뭐가 다르냐 원료가 다릅니다. 다이아몬드는 원료가 다이아몬드가 되어야 합니다. 가짜는 원료가 다른 것인데 똑같이 보일 뿐입니다. 


그 안에 뿌리가 성령님이 아닙니다. 자기의 영, 자기의 영으로 합니다. 원료가 자기의 영이니까 짝퉁입니다. 원료가 오직 성령님이 되어야 합니다. 원료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의 메세지는 하나님에게서 분명히 온 것입니다. 원료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메세지를 들을때 아휴! 들을게 하나도 없더라!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지적인 설교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식! 지식이 우리를 바꾸어 놓지 않습니다. 지식이 우리를 못 바꾸어 놓습니다. 감정을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정은 그때 뿐입니다. 또는 의싸! 의싸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 ! 합시다! 의지도 그냥 시들어 집니다. 그러나 결코 변치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진리 입니다.

진리는 우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진리는 감정 호소가 없을수도 있습니다. 진리는 지적이지 않아서 배울게 없을수도 있습니다. 진리는 때로 아무런 동력을 가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는 우리를 뿌리채 바꾸는 것이 진리입니다. 저는 수 천권의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많은 책들이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그 영향은 그때 뿐인 영향입니다. 책이라는 것이 읽을 때 뿐인 것입니다. 그때는 은혜가 있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도움이 안됩니다.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나에게 영속적인 은혜를 줍니다.. 만약에 진리가 그때 뿐이라면 이것은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희한하게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도 나를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새롭게 합니다.  그리고 안정권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하는 사역은 두 가지 입니다.  첫번째, 잘못된 번역들로 비진리가 되어있는 것을 바꾸어 놓는 것이고 두번째는, 번역된 새로운 내용을 가지고 다시 이것을 진리의 감동으로 이 메세지를 남기는 것, 이 두 가지가 제가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 외에는 남기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남기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무엇을 남기느냐 인간은 쓰레기를 넘어서 인간은 악취를 넘어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 너무 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고개를 들수없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우리는 벌레만도 못합니다. 늘 죄를 짓고 살아가니까, 맨날 오염되고 살아가니까, 인간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메세지를 전한 사람도 똑같은 인간입니다. 인간은 안 중요합니다. 하지만 메세지는 중요합니다. 

기드온이 많은 사람들을 인도한 다음에 자기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도 자기가 거꾸로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는것이 인간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없어질 존재 입니다. 하지만 메세지는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메세지는 영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영에서 오기 때문에 이것은 받으라 얘기 입니다. 나는 소리처럼 그냥가는 존재 입니다. 많은 경우에 목사님들이 나이 먹어서 명예 목사가 되고 많은 분들에게 환대를 받고 노후를 보내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왜 존재 하느냐 메세지 때문입니다. 이 메세지는 영혼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세지를 남길때만 내가 조금 존대받을 뿐입니다. 전하지 않을때는 의미가 없습니다.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저는 제 메세지를 잘 안 듣는데  가끔 들어볼 때가 있습니다. 왜 듣느냐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듣습니다. 설교가 내 것이면 내가 뭐하러 듣습니까? 나에게서 나온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메세지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나에게서 나온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나도듣고 나도은혜 받습니다. 아니라면 모든것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 메세지가 내 것이면 그것은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뭐하러 나를 전합니까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메세지를 전하셨기 때문에 나중에 은혜를 또 받는 것입니다.

인간의 것은 인간을 변화 못시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것은 인간을 변화 시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또 우리 모든 것에 원조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존중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세례요한이 가장 전파를 잘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자는 메세지를 증거하는 자 입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파했지요 자기 생각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달해줄 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돌로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 메세지는 여전히 유효하여서 지금도 우리는 메세지를 받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한 메세지에 우리는 지금도 은혜를 받습니다. 당시에 전한 복음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원한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복음도 영원한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서 나온것은 변치 않습니다. 10년이 지나도 100년이 지나도 똑같은 메세지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설교할 때 그럽니다. 수년이 지난후에  자기가 한 설교의 내용들이 바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어릴 때 한 설교라고 다르겠습니까? 메세지가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한 강해들은 수정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동안 수년의 기간이 지나왔습니다. 수정할 것이 없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원래 고칠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것은 매일 고쳐야 합니다. 인간의 메세지는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반짝 귀를 열게해서 영향을 줄 뿐 아무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것은 고칠게 없는 완벽한 채로 오기 때문에 그래서 메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복음전파의 성공자가 될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과대 평가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그냥 메세지를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스피커에 불과한 것입니다. 기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써 주셔서, 변화시켜주셔서,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은혜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역사에서 사라지는 마음, 내가 남는것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에 이 땅에서 영광을 받기를 원합니다. 사역을 한 다음에는 따로 남는것이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다음 메세지를 전하는 사람을 붙들어 주고 세워 주어야 합니다.

새로 사람을 불렀으면 자기는 사라져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인도해야 합니다. 메세지를 또 드러냅니다. 우리는 내가 메세지를 전할때만 사역자가 되는 것이지 전하지 않을때는 사역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그냥 작은자로 성도로 남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결국은 다 메세지 전파 입니다. 그래서 메세지 전파하는자가 사역자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같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도움자 레위인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세우는데 무엇으로 세웁니까 다 메세지로 세우는 것입니다. 봉사 많이하고 무슨 일 많이 하는것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전부다 메세지로 세우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이 끌고 갑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끌고 갑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끌고 갑니다. 날 주관합니다. 그것이 바른 것입니다. 어떤것을 이루고 성공하고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성공에 관심이 있으면 세상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왜 살아갑니까 우리는 말씀을 하나하나 이루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세지가 올 때 메세지가 나에게 이루어지려면 나도 예수님과 똑같이 말씀을 이루는 삶, 이것이 우리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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