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New요한복음 1장 6절 강해
6절(강해요약)
이 자가 증거하러 왔으니, 빛에 대하여 증거하며 또한 자기를 통해 모든 자들이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New요한복음 6절 입니다.
" 이 자가 증거하러 왔으니 " 이 자는 요한 입니다. 증거하러 오다 증거는 다른 것이 아니라 경험된 예수님, 내가 만난 예수님 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본 적이 없는데 무엇을 증거할까요?
처음에 세례 받으러 오셨을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전에 하나님께서 네가 만약 누구에게 세례를 줄 때, 성령이 오면 그가 예수님이라는 음성을 들었고 다음에 이제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 저 분은 예수님이시다 ' 라고 말하며 요한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따라 가라고 명령하는 두번의 장면이 나옵니다.
세례 요한이 증거한 내용은 두 번의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아니고,
그가 만난 분! 바로 메시야! 통치자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입니다.
' 그리스도 ' 라고 하는것은 예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온 상태를 그리스도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고유명사로서 그 분인데 그분이 내 안에 들어오신 것, 누군가 나를 통치하는 상태, 나에게 계신 예수님, 그 그리스도를 증거하러 온 것입니다.
" 빛에 대하여 증거하며 " 빛은 예수님의 속성이며 동시에 구원 받은 우리가 ' 빛 ' 입니다. 빛은 의로운 삶을 사는 자의 내용들 입니다.
증거한다는 것은 내가 배운것을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증거는 내가 만난 예수님 입니다. 내 안에 오시고 빛으로 채워서 나는 의롭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 돈 문제도, 가정 문제도, 직장 문제도, 어떤 문제라도 문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는 죄의 문제 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보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문제가 본질이 아닙니다. 문제란 것은 사실은 죄 문제인데,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벗어날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의 근거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 난 그분 때문에 죄에서 벗어난 자가 되었어! ' 라고 하는 나의 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증거이고 전도이지 그냥 남에게 가서 ' 너 우리 교회 와! 설교가 좋아! ' 그런것은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경험된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으면그것은 철학에 불과합니다. 교리에 불과합니다.
' 내가 기도했는데 응답 받아서 아파트 값이 올랐어! ' 있기는 있지요! 하지만 그런 내용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 내가 빛에 대하여 내가 전에는바르지 못한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바른 삶을 살게 되었다 ' 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증거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간증 합니까? 무슨 은사를 간증합니까? 무슨 계시를 간증합니까? 바른 간증과 계시, 바로 변화된 나를 간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간증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세상적인 간증을 많이 합니다. 그것은 이방 종교에도 있는 내용들 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방 종교에 없는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 빛 ' 입니다. 예수님은 빛일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은 사람도 빛이기 때문에 내가 ' 빛이 되었다 ' 입니다. 어떤 율법이나, 어떤 철학이나, 어떤 윤리도, 인간을 바꾸어 놓치 못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변화시켜서 의인된 간증!! 이것처럼 좋은 간증은 없습니다. 이것이 진짜 입니다.
' 그리스도가 나에게 빛이 되었기 때문에 나도 빛이 되었어! ' 이 말입니다. ' 난 더이상 죄에 거하지 않아 나는 이제 의가운데 거해! 너도 이제 이것을 따라가! 이것만이 천국의 길이야! ' 이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전합니까? 우리가 물질의 부요함을 전합니까? 천국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천국 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빛이 되어야 합니다.
' 빛이 되어야 해! 예수님 때문에 내가 빛이 되었어! 예수님 때문에 너도 이제 빛이 될 수 있어! 이분을 잘 믿자! 이제 끝까지 믿어보자! 믿으면 너도 될수 있어! ' 하고 빛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례요한이 증거하는 내용은 굉장히 바른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다른 것을 증거하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의 죄지은 것들을 다 통회시키며, ' 저 분이 예수님이시다! 저 분을 따라가면 너도 이제 빛의 삶을 살 수 있다! ' 하고 자기가 경험한 예수님을 증언한 것입니다.
" 또한 자기를 통해 믿는 자들이 믿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세례요한은 자기를 통해서 영광을 받거나 자기가 남들에게 어필되는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보통 우리는 증거자가 되면 어떤 위험에 빠질수가 있는데, 증거자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면 명예가 올라가고 자기가 유명해지는것 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철저하게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 그는 흥해져야하고 나는 낮아져야 한다. ' 오직 예수님을 높이는 삷만 살았습니다. 헤롯에게 ' 너 죄졌으니까 회개해! ' 잘못하면 죽임을 당하는데도 그것을 말할 정도로 진실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목숨을 조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세례요한은 목숨을 내 놓고 그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나타날때, 예수님이 드러날때, 우리 같으면 ' 내 사역 이제 망하겠네! ' 하겠는데, 더 잘되었다고 오히려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낸 사람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할수 있을까요? 철저히 세례요한은 예수님 중심으로 산 것입니다 자기 인생에, 운명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인생, 운명에대해서 먼저 챙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4년 동안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짓습니다. 그리고 7년째 부터 왕궁을 짓습니다. 3년이 지났습니다. 자기 집은 시작도 안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사랑하셨을까요?
대부분 자기 집부터 짓고 하나님께 헌금합니다. 일반적으로 내가 쓰고 남는 것들을 헌금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앞길 안 돌보고 하나님부터~ 하겠습니까! 그런데 솔몬은 성전을 4년동안 짓고 7년째 부터 자기 왕궁을 짓는데 14년 걸렸습니다. 이것이 솔로몬 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 자기 인생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애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위해서 그는 흥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가 쇠약해지는 것에 대하여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내려갑니까? 심지어 감옥에 들어갈 때까지 내려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막 올라갈때, 나는 내려가는 것입니다.그것은 모든 자들이 예수님을 믿기를 원하는 한 마음 뿐인 것입니다. 그것이 전도자의 자세가 되는것 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게하기 위해서 때로는 순교도 각오해야 합입니다. 나 때문에 믿기만 한다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그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이며 해야 할 직무가 되는것 입니다.
나 때문에, 누군가를 믿게 하기 위해서, 어디까지, 그리스도가 될 때까지, 구원에까지 이르도록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에게서 나온 두 제자가 바로 안드레와 요한 입니다. 이 두 명이 세례 요한의 제자 입니다. 이 둘이 예수님이의 큰 주축이 됩니다.
내가 키운 사람이 더 크게 쓰임받는다면 더 큰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키운 사람이 더 위대하게 되어야 하고 더 나아져야 하고 더 높아져야 하고 큰 일을 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것이고 그 사람을 또 키우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녀가 잘 안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잘 되어서 진짜 크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일이 세상에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기업도 아니고 복음 사역 아닌가요? 그래서 더 크게 일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항상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도 그렇게 키워지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래서 자녀들의 성장을 위해서 부모님들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소원이 되고 효도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교육을 위해서 달달이 수백만원씩 들여서 교육합니다. 왜요 자녀가 큰 사람 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영적으로도 더 나은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어렸을때 부터 훈련시키고 가르치면서 기도하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설령 내가 하지 못한 많은 영역들, 다윗이 성전건축을 크게 하기를 원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막아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이 해내니까 얼마나 다윗이 하늘에서도 기쁘겠습니까? 뿌듯할것 아니겠습니까? 내 영적인 소원을 이뤄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내가 하지 못한것 아쉬워 하지 말고 다음 누군가가 할수 있도록 늘 지원해주는 것도 큰 일입니다. 이 인생이라는 것이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 많이 증명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거이 교육학 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교육에 큰 힘을 씁니다. 그래서 그 신앙이 천년 이천년 해도 그냥 유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참 놀라운 세계 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처음 이스라엘이 건국 되었을때, 4백만명이 왔습니다. 지금은 9백만명이 되었습니다. 그 정도로 이사람들은 신앙이 좋습니다.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유입되는 것입니다.교육의 힘 입니다. 교육을 해서 더 나은 자들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 관심 없습니다. 예수님이 크셔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나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고 하는것,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 후대나 남이 이룰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고 소원 해야 합니다.
결국은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천국이 확산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자들이 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맞이하며 영접해서 다스리는 그런 나라를 우리는 꿈꾸어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와 세상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주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면 발전하는 것입니다. 마치 애굽이 요셉을 받아들여서 크게 성장한 것처럼 기독교인을 불신자가 받아들이면 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왜 중요합니까? 이제까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의 나라가 형성된 나라 치고 못사는 나라가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비록 가난할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인 국가는 다 성장했습니다.
이것은 경제 발전과 문물과 모든 지혜와 과학발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그 나라 전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왜 잘되었느냐 그것은 대한 민국의 기독교 때문이었습니다.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원리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적인 지혜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이유는 종교입니다. 종교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한 것들 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나라만이 아니라 육의 나라도 크게 확산시켜 버립니다. 반대로 지금은 전 세계가 기독교를 박해 합니다. 이제 붕괴만 남은것 입니다. 반대로 주님 뜻대로 가면 모든것이 발전 됩니다.
우리는 복음전파가 얼마나 중요한가 아셔야 됩니다.이것은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가정이 잘되고 그리고 국가가 잘되고 세상이 잘 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전파에 열정을 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쁘시니까요 그러므로 복음전파를 이해할때 단순하게 영적인 것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육의 부흥도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있는 곳에서는 항상 부강함이 있습니다.
복음전파를 위해서 가장 힘쓰는사람이 가장 위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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