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New요한복음 1장 4절 강해
4절(강해요약)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고,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빛이 어둠에 나타내지만, 어두움이 그것을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New요한복음 4절 입니다.
"그분 안에 " 그분은 예수님 입니다.
" 예수님 안에 " 하나님은 어떤 그 영역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역이 어디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이즈는 우리가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이 아니라 형이학적으로 보좌를 이렇게 그린 것이지 하나님은 성경 말씀대로 하늘보다 크시고 땅보다 크신데, 솔로몬의 말대로 하나님의 존재를 어디에 앉히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형상화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너무 크시기 때문에 형상화 하는 본질을 만들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 그분 안에 " 라는 것은 예수님이 계신데 그 안에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 자신의 뜻 안에 그분 Boundary 안에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 Boundary 안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 안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 생명이 있었고 " 생명! 우리는 다 생명이 있는데 원어적으로 히브리어에서 단수는 육신의 생명을 뜻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어에서 복수는 영의 생명 입니다. 그래서 여기 생명이라는 단어를 이해할 때, 생명은 육신의 목숨이 아닙니다.
영적인 생명! 그리고 생명들의 나무 입니다. 우리 에덴 동산에 있는 나무는 원어로 단수 생명의 나무가 아닙니다. 복수 생명들의 나무 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생명은 육신의 생명이 아닙니다. 영의 생명! 영의 생명이고 영의 생명들이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생명 " 너는 죽고 죽으리라 " 뭡니까? 육의 생명이 아닙니다. 영의 생명이 죽는 것입니다." 죽는다 " 영의 생명이 죽는 것을 육의 생명으로 생각하니까 왜 과일 먹었는데 안 죽었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해 입니다. 우리는 자연계도 있지만 영계가 있습니다. 자연계와 영계가 동반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육신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 영이 있습니다. 영은 소속이 영계이고, 육은 자연계 소속입니다.
사람은 자연계와 영계가 같이 맞물린 존재 입니다. 그러나 동물은 영이 없어서 자연계 입니다. 사람은 영계가 있습니다. 내 영적인 생명이 어디 안에 있느냐 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을 때만 내 영적인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벗어나면 죽음 입니다. 죽는것 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생명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내 영의 생명이 예수님 안에 있을 때는 내가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나오면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계에서 죽으면 영이 빠져나갑니다. 우리 영이 천국으로 가든지, 아니면 지옥에 갑니다.
그것을 우리가 " 죽었다 " 라고 합니다. 영의 분리! 예수님 안에 있다가 나오면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안은 천국, 낙원 하나님의 세계가 있습니다. 생명은 거기에만 있습니다. 나머지는요, 죽음 입니다. 죽음에는 마귀가 있고 생명 없는 자들이 죽은 자들 입니다.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빛 입니다. 어떤 빛일까요? 예수님은 스스로 " 나는 빛이라 " 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 "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내가 빛인 것입니다. 내가 구원 안에 있으면 빛이 되는 것입니다. 밖에 있으면 빛이 아닙니다. 내가 생명 안에 있으면 나는 세상의 빛 입니다. 구원 안에 있을 때만 우리는빛이 되는 것입니다. 나오면 우린 또 다시 어두움이 됩니다.
빛과 생명의 관점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느냐 없느냐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있는것이 구원 입니다. 예수님 밖에는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구원, 생명, 빛이 있습니다. 그럼 이 빛이 무엇입니까? 빛이 있으면 어두움에 다니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죄가 없는 것입니다. 어두운 생활이 없습니다. 암흑이 없습니다. 세상은 암흑 입니다. 세상에는 죄가 있고, 고통이 있고, 근심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안식이 있습니다. 평안이 있습니다. 물론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안에 있을 때만 남에게 빛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빛을 비출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 안에 있을 때만 빛이 되어서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빛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구원 안에 있을 때는 하늘에 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들에게도 빛이 비추어지는 것입니다.
"빛이 어둠에 나타내지만" 빛은 물론 예수님 이십니다. 세상은 어두움 입니다. 예수님 밖은 어두움 입니다. 빛을 이 세상에 나타냅니다. 또 우리도 동시에 예수님 안에서는 빛입니다. 예수님도 우리도 나타내지만 어두움이 그것을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어두움이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무엇을 찾아내지 못하느냐 자기가 어두움인 것과 빛 인것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자기가 생명이 없는것과 생명이 있는 것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왜 찾아내지 못할까요? 왜 힘들까요? 그것은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인간에게 심각한 죄사함과 무지와 어리석음이 왔기 때문입니다.
미련하다고 하지요.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 어리석습니다. 진짜 인간은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아니면 우리의 모든 판단과 기준은 가짜가 되는 것입니다.
왜요. 인간의 육신의 눈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육신입니다. 그래서 육신으로 보면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경험이 많다고 할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빛이 비추면 아는데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계는 어렵습니다.저는 은사를 중요시 여기지 않아요. 저는 말씀을 연구한 사람이기 때문에 은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은사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은사는 증명이 되어야 합니다. 은사가 증명되지 않으면 믿지 않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세계에 있는 내용들은 우리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것이 맞는 것입니다.
어떻게 증명 합니까?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 당신 지옥갑니다 " 라고 진단 내릴 때, 그 사람이 회개를 하면 틀린 것입니다. 영분별은 거의 확정적 입니다. 회개 안하면 당연히 지옥갑니다. 그것이 확증이 되는 것입니다.
영분별은 통변이나 예언과 다릅니다. 영분별이란 세계는 거의 확정적인 것입니다. 영분별은 천국 지옥에 대한 가짜 진짜를 분별하는 확정적인 내용들 입니다.
물론 과정 가운데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어렵지만 저는 이것으로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왜요 아무도 회개하지 않으니까요 죄를 지적하는 하나님 말씀이 나갔는데 회개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요? 그런데 회개를 왜 못하느냐 이미 하나님께서 확정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대부분 천국에 가는 사람들은 남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작고 구박받고 헐벗습니다. 의외로 이런 분들이 천국에 갑니다. 왜요. 사람들은 육의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영의 눈으로 보지 못합니다.
영이 죽었기 때문에 보지 못합니다. 영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데 빛도 없고 또 생명이 없으니까 도저히 어두움이 영적인 세계를 잡아내지 못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너무 차이가 납니다. 비슷하면 괞찮은데 전혀 반대 입니다.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옥에 가구요 어떻게 고생 많이하고 힘든 분들이 천국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가 발견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찾기도 어렵습니다. 어두움, 불신자들, 또 구원 받기 전에 있는 사람들, 또 거듭나기 전에 사람들, 이 구원이라는 빛된 세계를 우리가 깨닫는다는 것은 정말 이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 합니다.
얼마나 진리가 깨닫기 어려운 것인지, 찾기가 어려운지 성경에 있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요한이 등장하는데 요한은 하나님의 사람 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요한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떠하다 하는 것을 우리가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논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내가 보낸 사람을 분별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이 요한을 배척 합니다.
어둡기 때문에 찾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 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을 보면 우습게 봅니다. 깔봅니다. 거꾸로 무시 합니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요한도 마찬가지로 보냈는데 사람들이 무시합니다.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보십시요! 종교 지도자들이 반대하는 사람을 일부 죄인들이 가서 은혜 받은 것 뿐이었지 세례요한도 당시 사두개인 바리새인들이 다 거부 했습니다. 자기가 있었던 에세네파에서나 올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이 영계는 육의 눈으로 판단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찾아낼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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