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New요한복음 1장 2절 강해

2절(강해요약)

이 분은 처음에 하나님과 계셨습니다.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New요한복음 1장 2절 입니다.

"이분은" 이분이라 하는 말씀은 무엇이냐 먼저는 속성이고 속성을 내보낸 다음에 다시 이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이냐하는 속성, 예수님의 속성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속성을 1절에서 말씀 드렸고 2절에서는 의인화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예수님을 볼 수는 없습니다. 만날수도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느냐? 산에서 열심히 기도하면 만나는 분이냐? 그런 체험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말씀 '로고스' 성경 66권을 통해서 들어가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예수님이라는 진짜 살아계신 분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은 거듭남과 구원이라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이 통치하는 장소가 가나안 땅이고 그것은 구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통치하는 것을 바로 만나지 못하고 거듭남이라는 것을 통과해야 합니다.

광야는 성령님이 역사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먼저 거듭남을 통해 말씀의 씨로 성령의 은혜로 거듭나는데 성령의 역사 경험을 통해서 그 다음에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구원을 통해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끝나는 것입니까? 또 성전이 있고 영생이라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영생을 얻게되는 과정도 다 말씀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것은 기도도 아니고, 찬양도 아니고, 무조건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배드릴 때에 말씀을 3시간 동안 가르칩니다. 주일날 예배 때에 회당에서 3시간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배우고 또 그때 거듭 나져서 애통이 나올수 있구요 회개가 나올수 있습니다. 구원인가요?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 입니다.

이제 말씀의 본체가 되시는 예수님께 온전한 순종으로 들어가서 가나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목적은 순종 입니다. 

말씀이라는 개념 66권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면 절대 우리는 가나안에 못들어 갑니다.이 말씀 66권은 앎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읽거나 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순종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방법론은, 이 말씀을 안 다음에 내가 순종에 들어감으로서 그때 비로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이분 의 실체를 만나는 과정 가운데서의 불순종은 아무리 거듭났다고 해도 다 광야에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다 아는데 지옥에 갔습니다. 왜요! 순종이 되지 않으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내 마음이 변형이 필요한데 순종으로의 변화 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었는가에 대해서 이삭에게 "너희 아버지는 내 목소리와 내 임무들과 (명령) 계명들과 규례들과 그리고 내 법을 다 지켰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을 주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때에 규례나, 율법이나, 명령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율법은 나중에 800년 뒤에 모세가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이 행하였다고 합니다. 행하였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가나안의 복과 자손의 별과 같은 복을 주었다고 창세기 26장에 이삭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율법을 이해할 때, 말씀을 이해할 때, 내가 아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내가 아는 것이 말씀이 아닙니다. 부분적인 앎!  "내가 말이야 오늘 로마서를 읽었는데 어떠 어떠 했어!" 그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의미도 없습니다. 지극히 일부입니다.

아브라함은 아직 율법이 없었을 때도 그것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말씀은 이미 다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노아 이전에 구원을 받았을까요? 이미 말씀이 있었습니다. 단지 기록이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것이 기록 되지도 않았을때인데도 에녹은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동행한 것입니다.

말씀의 개념은 내가 아는 말씀이 아닙니다. 교리가 아닙니다. 말씀은 존재 합니다. 말씀이 언제부터 존재합니까? 세상이 나기 전 부터, 영세 전 부터, 우리는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내가 알고있는 몇가지 계명과 내용들이 아닙니다. 이미 말씀은 존재 합니다. 창세 전 부터 66권이 존재해 왔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것을 지킨 것입니다. 구원 받은 것입니다. 노아 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전에도 존재하는 말씀에 아벨도 순종한 것입니다. 물론 그때도 아무 성경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은 존재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는 왜 안되었을까요? 그들은 자기에게 임한 조그마한 말씀도 순종하지 않아서 지옥에 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 하실때 " 네 자손이 약속되었다!" 아브라함은 무조건 믿고 순종합니다. 그 믿고 순종하는 내용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고 다 순종합니다. 왜 순종할까요? 그것이 하나님 '로고스' 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성령의 음성을 부정할까요? 그것은 말씀에 대한 개념 차이 입니다. 말씀이라는 것은 내가 이해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모르는 말씀도 엄청 많이 있습니다. 성경 66권을 다 아십니까? 성령의 음성은 성경 66권의 내용을 잘 분해 시켜서 오늘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성령의 음성입니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으면 지옥 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못합니다. "성경에 다 있는데 뭐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하나!" 이들은 이해를 못해서 그렇습니다. 성령의 음성은 말씀의 본체이신 예수님의 원하는 뜻이 거기 숨어 있습니다.

성경 66권에 숨어 있습니다. 그것을 던져주는 것입니다. 방법론 입니다. 그래서 그것대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안하면, 천국에 갈수 없는 것입니다.

순종해야만 내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구요 순종해야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구원 받으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변화된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늘 이 분입니다.

"이분은 처음에 하나님과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처음에 하나님과 계셨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요 원래부터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천국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것 그것은 죽음입니다. 하나님 계신것 생명입니다. 천국의 개념은 교리에 있는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는 인식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양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느냐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전능자로서 우주를 통치하는 분으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다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 하나님과 함께 계신 예수님을 내가 통해서 믿는다는 사실 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게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다 말하기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이슬람교, 불교, 흰두교, 조로아스트교, 유대교 믿지 않는 것입니다. 왜 안 믿느냐 반드시 하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신 그 예수님을 통해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소의 휘장이 갈라집니다. 성소와 지성소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가는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예수님이 우편에 앉아계시고 마찬가지로 우리도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방법론, 우리가 말씀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여서 사변적이지 않고 진짜 순종을 통해서 내가 드디어 예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받아들여짐 입니다. 거듭남은 받아들여짐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말씀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우리가 받아들여지는 단계에 이르도록 훈련하는 것이 거듭남 입니다. 

거듭나서 말씀을 배우고 순종을 배우는 것입니다. 훈련의 땅 입니다. 배움의 땅 입니다. 학습의 땅 입니다. 가나안 땅은 거기는 순종의 땅 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으로 성경은 다 묘사됩니다.

하나님은 구원 밖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창세기를 번역할 때, 여섯째 날에는, 저녁이 되었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일곱째 날에는,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지금이 일곱째 날입니다. 드디어 자연계 마지막 재림까지가 일곱째 날입니다. 이때는 구원이 일어납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구원이 안식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힘쓸지니 구원의 날, 안식의 날, 가나안 땅이 같은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일곱번째 안식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7, 구원입니다. 우리를 구원시키려고 계속 가나안땅이 나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땅이 아닙니다. 구원 입니다. 그래서 이 구원으로 오게 하는 것, 살게 하는것, 그것이 하나님의 주 관심인 것입니다.하나님은 구원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려고 관심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예수님을 통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안에 실체로 들어오는 구원이야말로 내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떻게 함께하나요? 내가 예수님 안에 들어갈 때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거하시는데 처음부터 함께 했어요. 어떤 관계인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됩니다.

같은 동등되신데도 불구하고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 관계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거하는 아들로 사는 것입니다. 

거듭나면 다 자녀입니다. 하지만 상속의 자녀가 있고 못 받는 자녀가 있습니다. 못 받는 자녀는 종으로 불리어 집니다.누굽니까? 이스마엘 자손들 이스마엘도 거듭난 자녀입니다. 그러나 상속이 되지 않습니다.

왜요 불순종 때문에 말씀다 알고 하나님 믿어요 믿음도 있으며 체험도 있습니다. 또 은사도 있습니다. 계시도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은 가지 못합니다.

상속의 자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정받기 때문에 영원히 아들로서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천사보다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영광을 우리가 같이 얻는 것입니다. 아들이기 때문에 영원한 영광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신처럼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의 영체는 어떻습니까? 신적입니다. 우리도 부활해서 영원히 신처럼 같이 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때, 성경 66권을 대할 때, 아는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들이 설령 내가 모른다 할지라도 오직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잘 모릅니다. 천국갑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많이 알아도 지옥갑니다. 왜일까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은 성경이 쏟아져 나옵니다. 인터넷이나 방송에 그런데 지금은 말씀을 지키지 않습니다. 어떻게 지키지 않느냐?  "구원 받은것 믿으면 돼!" 하고 말씀에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처럼 십계명을 어기면 지옥 갑니다. 산상수훈지켜야 천국 갑니다. 비웃습니다. 분명히 성경에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명시되어 있습니다.그런데 그 말씀을 하지 않아요 왜 잘못된 교리 그것 하나 가지고 버티면서 말씀만 잔뜩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 배움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지금은 구원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사상 잘못된 교리 잘못된 것이 모든것을 망쳐 버리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학해서 교리 배워서 목회하면 말씀은 가르치지않고 교리를 가르칩니다. 요즘에는 말씀가운데 율법이 없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은사놀이 합니다. 계시놀이 합니다. 교리놀이 하구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성경가지고 기복적인것 하구요 율법, 명령이 없습니다.

설교에서 명령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도 서로 관계들이 좋습니다. 명령이 있으면 관계가 나빠집니다.  성공적인 이야기를 주로 하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니까 이것은 말씀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66권을 이해해야 하는데 여기 있는 것이 66권이 아니고 예수님은 이미 계시며 진리가 되십니다.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로 꽉 차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씀 입니다.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말씀에 순종함으로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영적인 안식을 누리고 가나안의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곱째 날의 역사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다 끝내셨습니다. 이제는 영혼창조 구원에 이르는 창조를 다시 이루는 일곱째 날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 때까지 하나님은 구원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구원받은 자는 똑같이 예수님처럼 구원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다른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구원으로 인도하는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순종의 말씀을 전파해서 같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이제 하나님과 영원히 거하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구원때 부터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하는 여호와 삼마 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항상 이제 함께 합니다.누구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항상 함께 있는 것입니다.

성삼위께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 대상은 성부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이 예배 대상이 되어서 드려지는 것입니다. 왜요 함께 머물기 때문에

세분은 한분이신데 성령님만으로 임하는 거듭남부터 구원까지 이것은 성령의 역사이지 구원으로 오해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고침 그런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기적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표적이 중요한것이 아닙니다.그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구원을 위한 방법론이지 구원부터가 오직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우리 성령님은 무엇 하시나 아닙니다. 구원의 역사가 진짜 역사입니다. 그리고 또 그것도 부정합니다 구원 상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생이 목적입니다. 

구원잃지 않는 영생 그래서 우리가 66권 거듭남과 구원과 영생이라는 코스를 밟게 만듭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밟게 하는것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내가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존재하는 그 말씀의 본체이신 예수님께 그것이 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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